다가오는 계절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고 허전하고 떨어지는 낙엽에도 불안할 겁니다. 저는 수능 전날 예비소집 끝나고 오전에 학교를 나와 집으로 가는 택시를 부르기 전, 그 서늘하고도 가슴 뛰었던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하거든요. 

수능 전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태연입니다.

대략 4주 정도가 남았네요.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할 때입니다. 학교 다니시는 분들은 전체적으로 많이 흐트러질 때이기도 하고요. 

몸부림/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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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독한 몸부림이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으로 비춰질 때가 있다 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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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튈 때다. 해 질 무렵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것은 붉고 고요한 풍경에 격정적인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비늘 안쪽으로 파고드는 기생충을 틀어 내기 위한 물고기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ㆍ농부가 해지는 들판에서 땅에게 허리를 깊게 숙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 농부는 엄숙하고도 가장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 풍경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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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앞다투어 빛나는 학교와 도서관과 공부방 또한 마찬가지

지금까지 달려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인생의 호시절이라 한다면 봄으로 일컬어지는 어여쁜 청춘만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또 여름과 가을을 지나고 다시 겨울이 오는 것처럼 우리네 삶은 여러 시기를 거치며 단단해지고 또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거겠지요.

여러분이 고대해왔을 봄은, 움트기 위해 긴긴 겨울을 지나온 꽃들의 계절입니다.

더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해 눈보라와 적막을 견딘 것이지요.

누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꽃을 준비하는 과정은 필연적인 고독이며 처절한 몸부림인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그렇기에 인정해줄 이도 없죠.

여러분의 겨울은 어떠합니까.

땅밑에서 피어날 준비를 하는 시간, 저는 그 겨울 역시 봄만큼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추 한 알/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길었던 겨울의 여정도 끝이 보입니다. 하던 대로만, 조금 흔들리더라도 다시 굳건하게, 스스로를 아끼고 칭찬하며 끝까지 나아가 봅시다. 돌아봤을 때는 어느새 많은 부분이 채워져 있을 것이니까요. 

담쟁이/나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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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을 뿐이다

살아내야 할 시간을

견디며

빈자리에

푸른 잎을 토해냈을 뿐이다

다만

절체절명

사는 일을 위하여

살아냈을 뿐이다

오늘 너는

흰 절벽을 푸르게 덮었다고 하는구나!

시간들이

직벽으로 서 있었는가?

절벽에서 살아왔는가?

절체절명

이 시간

살이 터지며 또 푸른 것

하나 토하자꾸나

이제는 보여줄 시간입니다. 수없이 떠올리고 연습했듯이, 여러분의 모든 것을 후회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보여주고 오세요. 떨리고 긴장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했고 그만큼 오랜 시간 의미를 부여했으니까요.

마음 차분하게 가지시고 심호흡 몇 번 하시면 어느새 이 고통스럽고 캄캄한 여정도 끝나 있을 겁니다. 누구는 허무하다고 하지만, 저는 끝나고 정말 후련했어요. 다 털고 나온 기분이었거든요.

여러분의 노력을 단 하루의 시험으로 어떻게 다 측량하고 평가하겠습니까. 다만 그 노력이 절대 헛되지 않을 거라는 건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분수/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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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돋움하는 발돋움하는 너의 자세는

왜 이렇게

두 쪽으로 갈라져서 떨어져야 하는가.

그리움으로 하여

왜 너는 이렇게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

모든 것을 바치고도

왜 나중에는

이 찢어지는 아픔만을

가져야 하는가.

네가 네 스스로에 보내는

이별(離別)의

이 안타까운 눈짓만을 가져야 하는가.

왜 너는

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떨어져서 부서진 무수한 네가

왜 이런

선연한 무지개로

다시 솟아야만 하는가.

그 무엇보다 찬란할 여러분의 봄을 위해, 얼마 안 남은 겨울 아낌없이 농축해 담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사(副詞)로 엮은 봄의 해례본/박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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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마지막 시접을 접어 공그르기를 끝내면

혓바닥 밑에서 아늘거리던 말문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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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마다 매화 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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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 다 지면 무슨 재미로

그러다가 살구꽃 피고 지고

또 그러다가 명자나무 넌지시 부풀 텐데

아마도 서부해당화 옥매화 손잡고 번질 텐데

봄의 해례본이 만장일치로 펼쳐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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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분홍,

제발 분홍,

아무쪼록 분홍, 분홍

실로 그렇게, 그럼에도 불구한 꽃 기별이 오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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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틈마다 사이 사이의 감정들이 무릎 꿇고 풀꽃 편지를 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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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야행성을 가다듬고 발치에 누워 갸릉거리는 고양이의 얄미운 시간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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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어진 한 행의 서정시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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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대로 아주 수식(修飾)의 봄밤이거늘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밝히는 사람이 되어 아름답게 피어나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반드시 그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봄의 관악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너는 피었다/류시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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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꽃, 너는 피었다

언제 피어야 하는지 대지에게 묻지 않았다

너를 창조한 이의 수신호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

피어나기에 최적의 장소인지

피는 것 도와줄 이가 있는지 살피지 않았다

눈 다 녹았는지

비소식 언제 잡혀 있는지

자꾸만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야생동물 발자국 옆에서

그냥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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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만큼 높이 자라야 흔들리지 않는지

속눈썹이 길어야만 하는지

어느 쪽으로 얼굴 향해야 하는지

오래 계산하지 않았다

지상에서 삶이 얼마나 길 것인지

다른 꽃들의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다

​

지난번 생이 얼마나 가파른 생이었나

얼마나 고된 노동이었나

입술 깨물며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봄 사용법 외우지 않았다

​

너는 꽃이면서

너 자신의 유일한 지지대

날개이면서

그 날개 밀어 올리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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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피었다

그냥 피었다

저는 가을에 살고 있습니다.

물드는 관악의 가을에 점점 정을 붙이고 있네요. 

아, 누군가 수능 응원 선물을 물어본다면, 과일모찌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