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수하면서 꼭 한 번쯤 써보고 싶었던 큐브 칼럼인데, 이렇게 기회를 얻어 쓰게 되었네요.

저는 고려대학교 간호학과 24학번으로 재학 중인 김시영입니다! 제 글이 공부에 큰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잠시 읽으며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하는 마음에 쑥쓰러움을 무릅쓰고 조금은 길 얘기를 끄적여 봐요.

우선 저는 처음부터 간호학과에 뜻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에요. 멋모르던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막연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의대를 고집했었고, 의대는커녕 이름 있는 대학교도 가기 어려울 만큼 부족한 수시 성적을 보고 정시의 길을 걷게 되었고, 열심히 하지 않았던 탓에 첫 수능을 망치고 재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당시에는 열심히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 있어요. 아침에 학교를 6시 반-7시 사이에 갔고, 학원도 꾸준히 다녔고, 수업도 정말 열심히 들었고, 제 실력에 비해 너무 어려웠던 공부도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했었으니까요. 저는 지구과학이랑 물리가 정말 싫어서 자연스럽게 화학 생명을 선택했는데, 10시에 마치는 화학 현장 강의는 마지막에 중화나 양적 관계 문제를 못 풀면 집에 보내주지 않으셨기에... 학원 문을 닫는 11시가 다 되어서야 문제를 겨우 풀어내고 나만 뒤처지는 듯한 비참한 기분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집으로 가기도 했어요.

근데 또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저 한량이지 않았나 싶어요 ㅎㅎ... 아직도 아이패드에 남아 있는 그때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공부 반 친구들과 게임한 것 반이었으니까요. 왜 그렇게까지 신나게 놀았는지 모르겠네요. 이게 아마 제가 재수를 '그냥 한 번 더 하지 뭐!' 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요. 열심히 일 년을 달리고 나면 다시는 이렇게 못 하겠다는 마음 반, 아쉬운 마음 반일 텐데, 저는 그냥 아쉬운 마음뿐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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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모하게 시작한 재수 생활은 제 생각보다 더욱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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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초반 몇 달은 꾸준히 아침 일찍 등원해 정말 공부만 했고, 그만큼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제가 수업을 듣던 과목 선생님들께서도 대체 겨울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다고 말씀해 주셨으니까요. 등원 시간보다 좀 더 빨리 학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학원에 가서, 밤 10시까지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많이 먹으면 졸리다는 이유로 밥도 정말 살 수 있을 만큼만 먹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살도 점점 빠지더라고요 ㅎㅎ... 그래도 성적이 오르는 게 보이니까 신나서 열심히 사는 하루에 매우 만족했어요.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저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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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가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마인드만 제대로 잡으면 얼마든지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어요. 그러나 일은 제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고, 그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버거웠어요. 그래서 학원에 있다가 뛰쳐나가기도 하고, 2-3일 정도 리프레시를 위한 휴식을 갖기도 하고, 학원 말고 독서실에 가서 공부도 해 보았어요. 그럼에도 괜찮아지는 건 잠시뿐이고, 조금 더 지나자 하염없이 눈물만 났습니다. 산책조차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이대로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수십 번은 한 것 같아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병원을 찾았고, 약을 먹으며 수능날까지 꾸역꾸역 버텼습니다. 마음이 약한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었던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부터는 성적을 더 올리는 게 문제가 아니었고, 그냥 이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버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께서는 모두가 힘들지만 티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원래 그렇게 힘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이미 지독한 우울을 겪는 사람에게는 잘 와닿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어요. 당장 내가 여유가 없고 힘들면 남을 돌아볼 생각도 잘 하지 못하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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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능장에 갔고, 수능을 치르고, 무너져 있던 기간이 꽤나 길었던 탓인지 원하던 성적을 받지 못하고 2월까지 재수를 고민했지만 도저히 이렇게 한 번 더는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아쉬움보다는 그 기간을 버텼던 제가 대견하고 그 기간을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한없이 감사한 마음뿐이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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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원하던 과가 아니었지만, 그리고 시험 기간에 갈려나가는 선배님들을 보며 두려움에 떠는 아기 호랑이지만,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학과 공부와 대학교에 감사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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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거 아닌 힘들었던 이야기고, 최대한 줄였는데도 너무 긴 글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끝난 입장에서 전하는 말이라 혹여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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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고,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일 년이 많이 두려우시죠.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목표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고, 이루지 못할 것만 같고, 그저 막막함에 눈물만 난다면 아주 잠깐이라도 쉬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산책을 하며 잠시 하늘을 멍하니 보거나, 강이나 바다나 하천에 가서 흘러가는 물을 가만히 쳐다보거나, 가장 아끼는 공간이 있다면 잠깐이라도 머물러서 쉬어 가셨으면 합니다. 그마저도 불안한 순간에는 공부를 하시되 잠시 짬을 내어 불안한 감정을 글로 써 보세요. 저는 블로그에 혼자 일기를 썼는데, 그게 마음을 다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정을 시각화하면, 불안한 감정이 어디서부터 찾아왔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가 보일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몇 번이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에게 털어놓아도 좋고요.

제 말은 감정을 혼자 간직하며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불안은 매일같이 찾아오고, 특히 자잘한 사설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날이면 정말 격한 감정에 휩쓸릴 수도 있어요. 완전한 해소가 아니더라도 열심히 달리는 여러분이 숨 쉴 틈이 있는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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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털어놓을 곳이 없고 따뜻한 말이 듣고 싶거든 언제든 찾아오셔도 좋아요. 작은 위로라도 건네드릴게요! 저는 많은 분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기에, 저도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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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의 일부를 올리며 글을 마쳐 볼게요.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오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