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얼마 남지 않은 시험을 앞두고 긴장된다는 의견이 많으셔서, 마지막으로 긴장을 푸시라고 제 시험장 이야기를 조금 풀어드리겠습니다. 따로 단독 칼럼으로 적거나 안 적으려다가, 적은 분량이라도 적으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수학 칼럼 마지막에 따로 적게 되었습니다. 이 글이 나중에 경찰대 시험, 나아가 수능 시험장에서도 시뮬레이션을 돌리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시험 전날, 저는 재종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 앞 프린트카페에 가서 흑백(지난번에 질문이 들어왔는데, 흑백도 괜찮습니다)으로 응시표를 프린트하고, 가는 길에 따로 핸드폰을 보고 길을 찾지 않기 위해 가는 길을 미리 외워놓았습니다. 저는 전자기기 화면을 보고 나면 글이 잘 안 읽혀서, 행여 국어 지문을 푸는데 지장이 있을까봐 였습니다. 그리고 수능의 마인드셋을 가지고 시험에 임하고자 제가 직접 정리한 수능 행동강령을 읽고 오후 11시를 갓 넘긴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시험을 응시하였습니다. 올해는 시험장이 서울에서 2개로 나눠져 있는데, 작년에는 하나인데다가 서대문구 외곽에 위치해 있어 가는 데만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강남 등 반대편 끝 지역 학생들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안 가기도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수능은 시험장이 멀다고 안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시험장이 먼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새벽 4시 50분부터 일어나서 시험장에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적중하여서, 그해 11월, 대중교통을 타고 40~50분 거리에 있었던 수능 시험장에 가는 것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워낙 이른 시각에 길거리에 나오다보니, 평상시에 북적거리던 도로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서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제 옆에는 노란 봉투를 든 중년의 남성분이 함께 서계셨습니다. 그렇게 사람 하나 없는 빈 버스에 중년의 남성 분과 함께 버스를 탔습니다.

그 중년의 남성분은 2번이나 환승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저와 경로를 공유했습니다. 마지막 환승 버스에서 드디어 가방을 맨 수험생들이 하나같이 핸드폰에 네이버 지도를 켜고 탑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적지에 임박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그 중년의 남성분 역시 끝까지 제 근처 자리에 앉아계셨습니다. 그제서야 출발지부터 함께했던 그분이 종착지까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경찰대 시험장 말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왜 이른 아침부터 가시는거지?”

“설마 경찰대 시험을 늦은 나이에 준비하시는 만학도신가...?”

“그래, 이제 신입학 연령제한도 40세 이하로 확장되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한쪽 무릎에는 인강 선생님의 EBS 연계 교재 정리본을 펼치고, 머릿속으로는 이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1시간 반에 가까운 버스 이동시간을 버텼습니다.

네이버 지도를 보고 있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고, 버스 내부에는 종착지의 알림음이 들립니다. 우수수 내리는 사람들과 중년 남성분을 따라 함께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모두가 버스정류장에서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왼쪽으로 가야할지 몰라 빙빙 도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제가 어제 외운 경로대로 한쪽 방향을 정해 앞장서니 사람들이 줄줄이 열을 지어 따라왔습니다.

비탈진 경사로를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가니 경찰관 분들이 서서 여학생 시험장과 남학생 시험장으로 학생들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수능과 마찬가지로 경찰대도 성별로 시험장을 분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경찰관 분 앞에서 제 근처에서 가시던 중년의 남성분이 갑자기 멈춰섰습니다.

“감독관으로 오신 선생님이세요?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길안내를 하시던 경찰관 분의 말씀을 듣고 그제서야 이 분이 경찰대 시험의 감독관으로 오신 평범한 교사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경찰대 시험도 결국 수능처럼 감독할 선생님이 필요했을텐데, 그 생각을 못하고 머릿속으로 이상한 잡다한 생각을 하던 저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아마 자신이 여학생시험장과 남학생시험장 중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모르겠으니 멈춰서셨던 것일 겁니다. 그렇게 저는 왼편의 여학생 시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시험장 밖에 지도로 수험번호에 따른 고사장을 안내하였고, 제 시험장은 5층이었습니다. 학교 건물로 들어가보니 학생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잔뜩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 속에서 엘리베이터를 꽉 채웠다가, 각 층별로 하나둘씩 내리면서 마침내 마지막 층인 5층에서 제가 내렸습니다.

시험장에 들어선 이후로는 실제 수능처럼 쉬는시간에 줄 안서고 바로 뛰어갈 수 있도록 화장실의 위치를 체크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사장에 들어가서 제 자리에 앉았습니다. 재수 수능과 현역 수능이 절로 생각날 정도로 분위기가 똑같더군요. 행동강령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미리 프린트한 B4 사이즈 23학년도 국어 기출을 풀었습니다.

시험 시간이 임박하자 여성 1분과 남성 1분이 시험장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여성 분은 잘 빼어진 정장 차림에 빈틈없는 표정으로 금속 탐지기를 손에 들고 계셨습니다.

‘이 분은 현직 경찰이구나.’

직감이 왔습니다. ‘경찰로서 경찰대 수험생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머지 남성 1분은 특유의 푸근한 얼굴이 마치 아까 버스에서 함께했던 중년의 남성분과 비슷한 인상을 보이셨습니다. 정장 차림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이 분이 바로 아까 그 분처럼 현직 교사 감독관이시겠구나.’

모든 고사실별로 부정행위를 확인할 경찰 1분, 시험을 진행할 감독관 1분이 2인 1조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복도에 금속탐지기를 든 경찰 분들이 구역마다 모두 비슷한 정장 차림으로 서계셨습니다. 모두 다 여성이셨던 걸 보면, 아무래도 여학생 고사장 특성 상 여학생의 몸수색 가능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장 총책임자처럼 보이시는, 경찰 근무복을 입은 나이 많은 남성 경찰관 분이 간혹 복도에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수능을 칠 때의 기억과 너무 유사해 그렇게 특이한 기억으로 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펜을 나누어주는지 여부를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수능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혀있지는 않지만 컴퓨터용 사인펜을 나눠주셨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화이트 역시 수능과 마찬가지로 교실 앞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인 시계를 가져오지 않는 중대한 실수를 한 수험생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아시겠지만, 수능은 시험장의 시계를 잘못 맞춰놓은 것이 귀책사유가 되지 않도록 아예 시계를 두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계를 안 가져가는 순간 시험 도중 시간을 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말 큰일 납니다. 그래도 여기는 수능만큼 박하지는 않아서, 경찰 분께서 시계 시간이 맞지 않아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시계를 어디선가 가져와 교실 맨 앞에 두시고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도 이런 경험이 쌓여서 수능에서 실수하지 않겠지.’

그 친구는 그 실수를 교훈 삼아 수능에서는 시계를 꼭 챙겨갔을 겁니다. 이렇듯, 실전 경험 하나하나가 쌓이면 나중에 본게임은 수능에서 큰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못 가져갔다고 하면, 제가 경찰대 시험을 칠 때는 시험장 앞에서 상인 몇 분이 시계나 컴퓨터용 사인펜 등을 파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그거라도 사야합니다.

수능과 비슷하게 신원확인을 하고, 감독관님께서 시험 중 주의사항을 읽어주십니다. 경찰관님은 학생들의 방석이나 귀마개 등을 실제 수능 감독관처럼 검사하시고 핸드폰을 거둬가셨습니다. 이후 예비령이 울리면 차례차례 OMR과 시험지를 나눠주셨습니다. 그리고 본령이 울리면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되게 됩니다.

국어 과목은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지만 언제나처럼 다름없이 시간이 빡빡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문제를 끝까지 못 푼(!) 학생들도 꽤 보였습니다.

영어 과목은 앞선 영어 칼럼에서 말씀 드린 사유로 인해 꽤나 당황하는 이슈가 있었지만, 다행히 무난하게 끝마쳤습니다. 여기서도 OMR을 한 줄로 민 학생들이 보입니다.

영어 시험이 끝나고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경찰대 시험장도 수능 시험장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쯤 되면 휴지가 바닥나기 때문에, 여학생이라면 꼭 개인 휴지를 지참하셔야 합니다. 역시나 많은 학생들이 휴지가 없어서 화장실을 못 가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나도 고3 땐 그랬었지’라고 생각하며 문 앞에서 몇몇 친구들에게 휴지를 조금씩 나누어주었습니다. 시험 중에 화장실도 못 가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제 이런 실수를 교훈 삼아 이 학생들도 수능장에는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갔겠죠?

마지막으로 수학 역시 23학년도보다는 쉬웠지만 만만치는 않은 난이도로 출제되었고, 수학 시험이 끝나고 나니 기진맥진한 시험장의 분위기가 정말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점심식사 없이 빠른 속도로 세 과목을 연달아 쳐야 해서 수험생들의 피로도가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능과 동일하게 휴대폰을 재지급받고, 교실에서 대기를 하다가 시험장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학생 시험장을 나오니, 멀리 남학생 시험장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사람 물결이 장관이었습니다. 안그래도 좁은 언덕길을 수많은 수험생들이 물살처럼 쓸려내려가며 빠져나갔습니다. 바로 집에 가고 싶었으나, 버스 정류장 앞은 이미 사람으로 도저히 탈 수 있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카레 가게에 가서 점심을 먼저 먹었습니다. 안에는 이미 수험생 하나가 가족들과 함께 카레를 먹고 있었습니다.

돈가스 카레를 먹으면서 경찰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이미 입학처 공지사항에 답이 떠 있었습니다. 카레를 먹다말고 바로 펜과 시험지를 꺼내(수능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경찰대 시험은 본인 시험지를 돌려주기 때문에 가채점이 필요 없습니다) 채점을 했습니다. 먼저 1교시 국어영역을 채점했습니다. 생각보다 잘 봐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2교시 영어영역을 채점했습니다. 딱 점수 계산을 끝낸 순간, 마지막 3교시 수학영역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절대 떨어질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속으로 크게 환호했습니다. 그렇게 신나서 남은 카레를 마저 먹고 카레집을 뛰어나왔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기억하는 24학년도 경찰대 시험의 한 부분입니다.

작년 제 기억이 일주일 뒤에 있을 여러분 모두의 기억이길 바라며, 긴 시간에 걸친 경찰대 1차시험 칼럼 연재에 관심과 사랑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학생들이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경찰대 시험 일주일 전에 모든 칼럼을 연재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다행히 이루었네요.

무더운 여름입니다. 모두들 건강관리 잘 하시고, 내년에 경찰대에서 뵙겠습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난 칼럼

[경찰대 1차시험 특강1 - 0교시 개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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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대 1차시험 특강2 - 1교시 국어 비문학편]

https://www.megastudy.net/campaign/study/snote_view.asp?idx=1108889&mOne=study3&mTwo=&mento_cd=&page=1&skey02=&sword=&ord=1

[경찰대 1차시험 특강3 – 1교시 국어 문학편]

https://www.megastudy.net/campaign/study/snote_view.asp?idx=1108890&mOne=study3&mTwo=&mento_cd=&page=1&skey02=&sword=&ord=1

[경찰대 1차시험 특강4 – 2교시 영어편]

https://www.megastudy.net/campaign/study/snote_view.asp?idx=1108893&mOne=study3&mTwo=&mento_cd=&page=1&skey02=&sword=&ord=1

[경찰대 1차시험 특강5 – 3교시 수학편]

https://www.megastudy.net/campaign/study/snote_view.asp?idx=1108897&mOne=&mTwo=&mento_cd=&page=1&skey02=&sword=&ord=1